강서현 개인전 <사랑과 죽음과 고통이 말을 타고 달리네>


 호메로스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곧 모험이야기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말을 몰아 달리고, 배에 올라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는 하나의 모험과 같다. 그 모험의 길 위에서 우리는 어느 날 사랑을 만났다 떠나보내기도,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기도 하며, 이겨내기 힘든 고통과 마주치기도 한다. 

 2017년 언니가 사랑니를 뽑고 원인을 알 수 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듬해 수련 수녀였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수녀원에서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그 다음 해 나는 살아온 인생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고, 지난 해 그녀와 헤어졌다. 그리고 24년의 오늘, 7년 전에 비해 언니는 건강을 많이 되찾았고, 친구는 내 꿈에 찾아오기를 멈추었으며, 나는 더 이상 지나간 연인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때때로 그 기억들에 붙잡힌다. 잠깐 한 눈을 팔면 수녀님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장례식장에 서있고, 옆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자다 깬 밤의 풍경이 스친다. 나는 슬프지만 잊을 수 없는 그 기억들을 붙잡아 과거에서 현재로, 더 나아가 미래로 이어질 이야기를 만든다. 슬픈 기억과 지나간 행복에 붙잡혀 수없이 주저앉고도 다시 일어나 앞을 보고 달리는 괴물들의 모험을 그린다. 그들은 죽은 친구를 살리기 위해 관을 지고 지옥을 걷고, 과거에 갇히지 않으려 성벽을 무너뜨린다. 무덤 아래에서 되살아난 친구는 다시 꿈을 좇아 전장에 뛰어든다. 쏟아지는 장대비에 무릎 꿇은 전사는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검에 몸을 기대고 일어날 채비를 한다. 한 쪽에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바다로 떠나고, 고통에 감싸여 번데기가 되었던 몸은 나비로 탈피해 희망을 찾아간다. 

 반은 현실이고, 반은 환상인 이 이야기들은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주인공은 나 뿐만은 아니다.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려 애쓰는 모든 이는 곧 모험을 이끄는 영웅이다. 인생에서 우리는 사랑, 죽음, 고통 그리고 환희, 탄생, 축복, 이별, 공포와 같은 수많은 감정과 사건들을 만난다. 사람들은 상처입고, 실수하고, 인내하고 또 이겨내며 다시 한 번 말 위에 올라 각자 자신만의 모험을 이어나간다. 세상에 같은 모양과 같은 빛깔의 삶은 하나도 없고, 그 다양한 삶을 살아내려 애쓰는 모험가들이 있을 뿐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 전시는 준비하며 유독 죽은 친구 생각을 많이 했다. 죽음에 관한 그림이 가장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친구도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서 자기만의 모험을 이어나가고 있을까? 내게 많은 기쁨과 웃음을 주었던 친구에게 감사하며, 마지막으로 그가 생각나 메모장에 옮겨두었던 소설 금각사의 한 구절로 글을 마친다. 오늘은 오랜만에 꿈에서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를 잃고 나서 지금 새삼스레 느끼는 것은, 나와 밝은 대낮의 세계를 잇는 한 가닥의 실이 그의 죽음으로 인해 끊어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나는 잃어버린 낮, 잃어버린 빛, 잃어버린 여름 때문에 울었다.’
-강서현





사랑과 죽음과 고통이 말을 타고달리네
Love, Death and Pain Ride on Horses

85 X 233.5 cm, Oil on canvas, 2024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Love is a Dog From Hel

29.7 X 89.1 cm, Color pencil on copying paper, 2024





가족
The Family

50 X 60.6 cm, Oil on canvas, 2024







사랑을 찾아 떠나요
Find Love

53 X 72.7 cm, Oil on canvas, 2024







기억이 만개한 꽃밭에서
In a Flower Field Full of Memories

145.5 X 97 cm, Oil on canvas, 2024







악보가 불타기 전에 노래를 마치자
Let’s finish the song before the sheet music burns
100 x 73 cm, Oil on canvas, 2024





성벽을 부수어라
Break Down the Walls

50 X 73 cm, Oil on canvas, 2024









어떤 것을 그토록 사랑했길래 몇번을 살아났나요
What is It That You Love So Much, that Makes You Survive Time and Again

65.5 X 100 cm, Oil on canvas, 2024





너를만나기 위해 지옥을걸었다
I Walked Through Hell to Meet You

89.5 X 130.3 cm, Oil on canvas, 2024







문을 열어달라고 악마에게 빌었다
I Begged the Devil to Open the Door

18 X 14 cm, Oil on canvas, 2024





성을 파괴하는 용
A Dragon Destroying a Castle
22.7 X 16 cm, Oil on canvas, 2024

영웅은 괴물의 얼굴을 한다 
The Hero has the Face of a Monster 
53 X 45.5, Oil on canvas, 2024




강서현 개인전 <사랑과 죽음과 고통이 말을 타고 달리네>
2024. 7. 3 Wed ~ 2024. 7. 21 S​un



기획: 강서현
전경촬영: 이의록
주최: CHMBR



© Seohyun 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