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현 개인전 <Macho Me, Macho!>


서문

 피와 땀, 폭력과 전투, 엔진소리와 배기음으로 가득한 세계는 여성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남자들만의 미학으로 표현되곤 했다. 그리고 그 세계가 표상하는 물리적·개념적 힘과 역경에 맞서 싸워 종국에 승리하는 경험 역시도 남자아이들의 전유물일 따름이었다. 여자아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경계를 읽어내고 한발 물러서서 ‘진짜 여자’의 행복을 찾아내든지, 아니면 굳이 그 영역으로 비집고 들어가 구색 갖추기 차원의 홍일점이나 깍두기가 되어 숨죽이고 있으라는 요구를 내재화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다른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그들은 이 마초적 문화가 얼마나 차별적이고 폭력적인지 조목조목 고발한다. ‘남성우월주의적 문화’는 여성을 배제하고 대상화하며, 따라서 여성이라면,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 있는 이들이라면 응당 그러한 문화를 비판하고 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애착은 윤리의 문제로 변모하고 ‘옳은’ 문화를 향유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요구가 되었다.

이전부터 강서현의 작업에는 장엄한 전투의 풍경이 묘사되었다. 압도적인 크기의 괴물과 거대로봇들이 거리를 불태우고 서로 칼을 겨누었고, 작은 인간들은 괴수들에게 짓밟히기도 하고 반격하기도 하면서 피투성이가 된다. 괴물과 로봇들은 육체적 성차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이자 사회적 규범과 제도의 밖에서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존재이다. 여성이자 퀴어로서, 작가는 자신과 소수자들의 삶을 전장에 빗대어 우리를 구속하는 세계를 때려 부수는 상상을 한다. 불과 피와 벼락이 몰아치는 전장은 태곳적 신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문명의 발전은 구분과 차별을 동반했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구획에 의해 제한되고 억압된다. 따라서 계몽의 빛 그 이전의 원형으로 돌아가는 것, 혼돈으로 가득한 세계는 오히려 모두가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투쟁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은유한다.

하지만 그러한 공간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첨예한 구분으로 가득한 시대에 그리는 자연스러운 삶은 가장 인위적으로 상상된 것일 따름이다. 집요하게 묘사되는 로봇, 괴물, 전사의 도상 이면에는 메타포와 당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애착이 존재한다. 그래서 강서현은 이번에는 자신의 원형을 돌아본다. 무엇이 하필 괴물과 로봇의 삶을 꿈꾸게 했는지, 이 싸움을 시작하게 만했는지 솔직하게 꺼내온다. 가부장 이데올로기와 문화 산업에 의해 조작되어온 것일지언정 그것은 거짓이 아니라 우리의 시작 지점일 것이기 때문이다. 《Macho Me, Macho!》에는 어린 강서현이 열광했던 ‘마초적’인 문화들이 가득 담긴다. 캔버스에는 한편으로는 자신을 배제해 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향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겨졌던 세계에 대한 동경이 가득하다.

 하키, F1 레이싱, 서부극의 무대들은 비례와 시점을 무시하고 늘어나거나 줄어들거나 펼쳐진다. 어린아이들이 화면의 시점과 상관없이 사물을 가장 멋진 각도로 그려대듯이 레이싱 카나 탱크, 공룡들은 어디서 본 듯한, 그러나 멋진 자세와 시점으로 제시된다. 그가 재구성하는 화면은 그가 사랑했던 마초적 이미지에 대한 동경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부수기도 하고 규칙을 어기기도 하고 다른 주인공들을 내세우기도 한다. 캔버스 절반을 채우는 거대 괴수부터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인간들까지 모두가 하나하나 자신의 표정을 갖고 필사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우리는 그것을 때려 부수는 괴수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상처를 입은 이들이기도 하며 혹은 누가 다치건 말건 관중석에서 그 광경을 즐기는 이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 무엇이 되든 치열한 싸움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것은 같기 때문이다. 마초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배제의 힘을 잃고 모두를 위한 전장이 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마냥 즐겁고, 무엇을 그려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었던 때의 강서현의 스케치북은 공룡, 로봇, 권투선수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이것은 사실 경계 밖으로부터의 침입이 아니다. 강서현은 한 번도 그곳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아름



질주를 멈추지 마!
The Half World

193.9 x 390.9 cm, Oil on canvas, 2024









탱크
A Tank

Variable dimensions, Ceramic, 2023


작가노트

 나는 어려서부터 땀범벅이 된 채 옥타곤 안을 뒹구는 격투기 선수나 굉음을 내며 거칠게 달리는 F1 레이서, 싸움을 거듭할수록 점점 강해지는 만화 속 인물들을 동경했다. 뿐만 아니라 내게는 멋진 유니폼, 화려한 레이싱 카의 외형 등 그것들과 관련된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로봇과 공룡, 자동차, 스포츠나 전쟁.... 어린 시절 나의 스케치북은 강하고 거친 것들에 대한 선망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내가 즐겨 그리는 것들이 남자들의 취향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은 훨씬 더 나이를 먹고 나서야 알았다. 작품 활동을 하며 작가가 ‘남자’인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나는 이런 오해가 의아했다. 사회 문화적으로 남자들이 선호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들이 곧 남성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사람들이 흔히 ‘마초(Macho)’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마초’는 스페인어로 ‘남자’라는 뜻이다. 지금은 ‘남성 우월주의’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본래는 ‘기백 있고 늠름한 남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나는 여자들도 원한다면 ‘마초’같은 차림을 하거나 ‘마초’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릴 적 내가 동경하던 강하고 거친 세계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이 편견 없이 사랑해주길 바라며 이번 전시를 구상했다. <Macho Me, Macho>라는 제목은 ‘Macho’와 ‘Love me’를 합쳐서 내가 새롭게 만든 말이다. 이 말은 마음 한 구석에 숨겨진 ‘마초’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내가 건네고 싶은 인사이기도 하다. 

 나의 작업은 좋아하는 것들로 스케치북을 가득 메우던 순수한 아이의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늘 그 때의 마음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이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스케치북에 바로 그리는 것처럼 나도 정교한 계획 없이 종이나 캔버스에 바로 밑그림을 그린다. 나는 일부러 최초의 선들을 마지막까지 남긴 채로 그림을 완성한다. 때때로 밑그림을 고쳐서 더 좋은 표현이나 더 좋은 구도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게는 흰 종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떠오른 광경을 주저 없이 그려내던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창고에서 발견한 어린 시절의 그림들은 시점도 제각각이고, 입체감도 없이 납작했다. 나는 그 그림들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강렬한 소재들을 아기자기하고 섬세하게 그리는 방식 역시 유년의 나에게 배운 것이다.

빨리 어른이 되어 강해지고 싶었던 나는 여전히 나약하다. 실패에 쉽게 좌절하고, 외로움에 슬퍼지고, 죽음이 무섭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실패를 두려워않고, 가치를 위해 투쟁하며, 죽음도 불사하는 존재들을 그린다. 나는 나보다 더 강인한 존재들을 그리며 나 자신도 그들처럼 굳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와 같이 자신의 나약함을 통감하는 많은 이들이 전시를 통해 조금이나마 용기를 갖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만들어 낸 세계가 위로와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반가운 인사말로 긴 글을 마친다. ‘Macho Me, Macho!’

-강서현
Since I was young, I have yearned for – and sometimes wished to become – such figures as sweat-shedding Mixed Martial Arts (MMA) fighters wrestling in a UFC octagon, Formula One (F1) racers valiantly driving racing cars producing a thundering noise, and cartoon characters who, repeating fights, are becoming ever more invincible. Besides, to my eyes, everything related to racing – including magnificent uniforms and the splendid exterior body of racing cars – looked gorgeous. Robots, dinosaurs, automobiles, sports, wars, and all the strong and tough things became the objects of my envy, which have densely filled up the space of my sketchbooks.

It was not until I grew much older that I noticed the lion’s share of my drawings caters to the male taste. When I every now and then heard that my paintings were sometimes misunderstood as those drawn by a male artist, I felt something strange. I terms of social and cultural perspectives, men are liable to prefer some to others, but nothing can be the sole possession of men. The term “macho,” used in everyday life, came from Spanish and originally means “a spirited and imposing male,” though it currently refers to “male chauvinism.” I have long believed that women, if they want it, can wear dresses or behave like a “macho’ person. This exhibition, therefore, has been designed to fulfill my wish to let the audience understand, without prejudice, the aesthetics of the strong and tough world. The tile “Macho Me, Macho” is a compound word of my coinage merging ‘Macho’ with ‘Love me.’ It is kind of a greeting to someone who has not yet found a sense of a “macho” person deep in the mind.

My career of art creation originally started from the pure and unsophisticated mind of a child who loved filling up the space of sketchbooks with what she loved most. I still recollect my younger days when I draw paintings. As children draw something extemporaneously right out of mind on sketchbooks, I directly make a rough initial sketch without any elaborate scheme. I deliberately do not erase the initial lines to the end. I sometimes think some changes would help me come up with the better ideas in terms of pictorial expressions or composition, but still stick to the initial touch because, I believe, it is important for me to maintain the purity of a child who draws on the white paper what immediately comes to her mind without hesitation. When I examine the paintings of my younger days I preserve in my storeroom, I find both diversity in terms of viewpoints and flatness on the surface being devoid of a three-dimensional effect. I love a sense of freedom I find from those works. The paintings of my younger days have taught me how to draw the stronger figures or things in the delicate and the charmingly decorated techniques.

When I was a child, I wished to become a strong person when I grow up. Now, I know I am still weak even though I have long wished to be stronger both mentally and physically. I am still frustrated by failures, become sad out of loneliness and feel gripped by death. That is the reason why I portray the figures who are not afraid of failures, struggle for genuine values and resist death. I wish I would be stronger like those figures of my imagination. I hope those who sometimes feel weak like me would get some courage from this exhibition. I wish my artworks would offer some solace to them. Let me finish this with my sincere greeting: Macho Me, Macho!

Translated by Sohn Tae-soo








생체실험에 저항하는 레드기어 전사와 그의 무리
A Biotest-resisting Red Gear Warrior and Its Followers 
45.5 x 53 cm, Oil on canvas, 2023




아드레날린 펀치!
Adrenalin Punch!

50 x 72.2 cm, Oil on canvas, 2023




오늘을 향해 쏴라!
Seize the Day (Carpe Diem)

53 x 45.5 cm, Oil on canvas, 2023




겁이 많은 한 녀석2
A Scared Pirate

13.8 x 22.7 cm, Oil on canvas, 2023

날개를 달아줘요!
Give Me Wings

Ceramic, 2023









세상은 너의 것
The World Is Yours

112.1 x 162.2 cm, Oil on canvas, 2023




순수한 전투
An Innocent Battle

65.1 x 90.9 cm, Oil on canvas, 2023







하늘이 무너져도 넣고말겠어!
We Will Score Goals Even If Heaven Falls!

59.4 x 126 cm, Color pencil on copying paper , 2022




겁이 많은 한 녀석3
A Scared Player
13.8 x 22.7, Oil on canvas, 2023








레기온: 겁이 많은 한 녀석1
Legion: A Scared Soldier
13.8 x 22.7, Oil on canvas, 2023

엉엉 우는 로마 병사
The Crying Soldier
Ceramic, 2023











강서현 개인전 <Macho Me, Macho!>
2023. 5. 12 Fri ~ 2023. 6. 6 Tue



기획: 이아름
전경촬영: 이의록
디자인: 장소희
번역: 손태수
주최/주관: YPC SPACE
후원: 서울문화재단, 서울특별시


© Seohyun Kang